질문만 이어지면 대화가 아니라 서류가 됩니다
낯선 사람과 처음 이야기할 때 가장 흔히 듣는 조언이 질문을 많이 하라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질문만 계속되면 대화는 금세 형식만 남습니다. 어디 살아요, 무슨 일 해요, 취미가 뭐예요. 대답하는 쪽은 서류를 채우는 기분이 되고, 묻는 쪽은 다음 질문을 고르느라 상대의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진짜 문제는 정보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은 계속 자기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면, 대답하던 쪽은 자연스럽게 경계하게 됩니다. 어색해서가 아니라 균형이 맞지 않아서 불편한 겁니다. 대화를 살리는 건 질문의 개수가 아니라 주고받는 리듬입니다.
대답에 한 줄만 붙여 보세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질문을 던지기 전이나 후에 자기 이야기를 한 줄 덧붙이는 것입니다. 길 필요도, 대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 "요즘 뭐 봐요?" 대신 "요즘 밤마다 다큐만 보게 되던데, 그쪽은 뭐 봐요?"
- "주말에 뭐 했어요?" 대신 "저는 주말 내내 집 정리했어요.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 상대가 답하면 "아 그렇군요"에서 멈추지 말고 "저는 반대로…" 혹은 "저도 비슷한 게" 같은 연결을 덧붙입니다.
이 한 줄이 상대에게 두 가지를 알려 줍니다. 하나는 당신도 대화에 참여할 생각이 있다는 신호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해도 되는지에 대한 기준입니다. 사람은 상대가 연 만큼만 열기 마련입니다.
깊이는 계단처럼 올라갑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데도 순서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무거운 고민을 털어놓으면 상대는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당황합니다. 반대로 끝까지 날씨 이야기만 하면 대화는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보통은 취향에서 시작해 생각으로, 그다음에 경험으로 넘어갑니다.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에서 요즘 관심 있는 주제로, 거기서 왜 그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로 한 칸씩 올라가는 식입니다. 상대가 같은 높이로 따라오면 한 칸 더 올라가고, 짧게 답하고 화제를 돌리면 그 자리에 머무르면 됩니다. 이 신호를 읽는 게 대화 기술의 대부분입니다.
자기 이야기와 개인정보는 다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드러낸다는 건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지, 신원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영화에서 왜 울었는지는 얼마든지 말해도 되지만, 사는 동네와 직장 이름, 다니는 학교는 다른 문제입니다. 친밀감이 생겼다는 이유로 이 둘을 섞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계속 묻기만 하고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면, 혹은 유독 신원과 관련된 것만 파고든다면 대화 자체를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균형을 맞추자고 제안해 보고, 그래도 달라지지 않으면 인사하고 끝내면 됩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끝까지 갈 의무가 없는 대화입니다. 그 점이 오히려 편하게 말할 여유를 만들어 줍니다.